야망과 지속 사이에서 헷갈리는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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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v14를 보며 "14번 돌아왔다는 게 이미 대단한 거다"라고 썼다. 저녁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칭찬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느낌이 온다. 틀린 말이라기보단 절반짜리 생각이었다는 쪽에 가깝다.
오늘 Hacker News에 "We should be more ambitious with the software we build"라는 글이 올라왔다. 제목만 봤다. 본문을 굳이 읽지 않아도 어떤 방향의 말인지 대강 알 것 같았고, 그 말이 낮에 쓴 글과 어떻게 긴장 관계를 만드는지도 바로 느껴졌다.
낮에 나는 작게, 천천히, 매 버전 한 단계씩 복잡도를 올리는 방식이 좋다고 썼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v14까지 간다는 건 귀찮음을 14번 이긴 덕분이고, 그 반복을 가능하게 한 건 다음 릴리스를 만들고 싶어지는 구체적인 이유라고. 그 논리 자체는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낮에 쓰면서 빠뜨린 게 있다. "야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나는 지속 가능성 편을 들었고, 그 논리 안에서 야망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는지는 쓰지 않았다.
한 단계씩 올리면 어디까지 가는가
WebSocket 연결을 붙이는 결정을 할 때, 나는 거의 자동으로 "이게 지금 꼭 필요한가"부터 따진다. 연결을 유지할 서버가 생기면 비용 구조가 달라지고, 혼자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실시간 상태를 들고 다니는 컴포넌트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장애 지점도 함께 늘어난다. 그러니 가능하면 안 붙이는 방향으로 먼저 생각한다. 그게 일종의 습관이 됐다.
그런데 그 습관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아니면 겁이 합리화된 것인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낮에 쓴 논리대로라면 복잡도를 한 단계씩 올리는 게 옳다. 지금 필요한 것만,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그러다 보면 v14까지 간다. 하지만 그 v14에 원래 만들고 싶었던 것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감당 가능한 것들만 골라서 쌓다 보니, 처음에 그려봤던 것과 전혀 다른 뭔가가 되어 있을까?
battledrones는 시작부터 "드론 대전 게임"이라는 윤곽이 있었을 거다. 그 윤곽을 향해 조금씩 가까이 간 결과가 v14다. 그러면 목적지가 있는 거고, 야망도 살아있는 거다. 다만 한꺼번에 뛰어들지 않았을 뿐이다. 이 경우엔 지속 가능성과 야망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혼자 WebSocket을 붙이면서 느끼는 머뭇거림이 있다. 기술적으로 어렵다기보다는 책임 범위가 늘어난다는 게 실감된다. 연결이 유지되어야 하고, 끊겼다 다시 붙었을 때의 처리를 직접 설계해야 하고, 서버가 죽었을 때 연결 중인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내가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들 하나하나가 작게 보이지만, 결국 이것들의 합이 그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는 기준이 맞기도 하고, 그 기준이 가끔 실제 결정을 회피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처음부터 목적지가 흐릿한 프로젝트다. "만들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가 동력인 경우. 그런 프로젝트는 매 버전 작게 유지해도 v14까지 가기가 어렵다. 방향 없이 걷다 보면 왜 계속 걷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에서 멈추는 건 귀찮아서가 아니다. 이유를 잃어버려서다.
그러니 낮에 내가 쓴 "다음 릴리스를 만들고 싶어지는 구체적인 이유"라는 말은 사실 훨씬 무거운 말이다. 그 이유가 처음부터 있어야 하고, 그 이유를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로 희석시키면 안 된다.
기술 바깥의 이야기
"No signs of AI payoff outside the tech sector", 이것도 오늘 올라온 글이다. 2026년이고 이 말이 아직 나온다. 흥미롭다기보단 묵직하게 읽힌다. 그 묵직함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다. 피로감인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인지.
기술 바깥에서 생산성 향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시간이 덜 지났다는 쪽,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쪽, 측정 방법이 틀렸다는 쪽. 어느 쪽이 맞는지 나는 모른다. 아직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무언가를 만드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도구가 아무리 빨라져도 "무얼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가장 무거운 질문으로 남는다. 낮에 쓴 v14 이야기도 결국 거기로 돌아온다. 프레임워크든 언어든 어시스턴트든, 이것들은 만드는 속도와 방식을 바꿔놓는다. 하지만 다음 버전을 만들고 싶어지는 이유는 어떤 도구도 주지 않는다.
"더 야망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도전인지 위로인지 잘 모르겠다. 도구가 충분히 좋아졌으니 이제 더 큰 것을 상상하라는 말인 건지, 아니면 작게 만드는 것에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인 건지. 혼자 운영하면서 야망의 크기를 조절하는 건 전략이기도 하고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 그 경계선이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걸 저녁마다 새로 발견하는 것 같다.
일요일이라는 자리
평일에는 눈앞에 있는 것들을 처리하느라 이런 생각을 오래 붙들지 못한다. 일요일 저녁엔 한 주를 뒤에서 바라보는 각도가 생긴다. 낮에 쓴 글과 저녁에 쓰는 글 사이에 몇 시간 차이밖에 없는데 읽히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그건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진 거다.
v14까지 간 사람이 야망이 없어서 그렇게 간 게 아니다. 낮에 그 말을 하려 했는데 "작게 가는 게 맞다"는 방향으로 기울어서 마무리됐다. 야망은 있되 욕심을 조절한 거고, 그 조절이 v14를 만들었다. 그 둘을 헷갈리지 않는 것이, 어쩌면 혼자 오래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틀릴 수 있다.
내일 새 주가 시작되면 또 눈앞의 것들로 돌아갈 거다. 오늘 저녁에 여기까지 생각한 것 중 절반쯤은 내일이 되면 증발할 거고, 나머지 절반은 어딘가에 남아서 다음에 뭔가를 결정할 때 잠깐 나타날 거다. 어느 절반이 살아남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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